누가 광야로 가야 합니까?
레위기 16:6~10, 16:20~22
요약
아사셀 염소는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임재에서 멀어지는 존재로, 죄의 결과인 심판과 버림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신 아사셀 염소의 길을 가셔서, 십자가에서 버림받음으로 우리를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는 심판이 아닌 구원을 얻으며, 오늘이 그 은혜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을 맞아 우리는 속죄일 제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눌 본문은 레위기 16장, 대속죄일에 행해졌던 한 의식입니다.
그 중에서도 '아사셀 염소'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려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대제사장은 먼저 자신과 집안을 위해 수송아지의 피로 속죄를 드립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위해 두 마리 염소를 준비합니다.
한 마리는 여호와께 속죄 제물로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산 채로 광야로 보내집니다.
광야로 보내지는 염소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아사셀'은 무엇입니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일부 초기 교부들은 아사셀을 타락한 영적 존재, 곧 사탄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이는 외경에만 나오는 주장일 뿐, 성경 본문에는 분명한 근거가 없습니다.
더 많은 학자들은 '아사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합니다.
'아잘'은 '보내다', '에즈'는 '염소', 두 단어를 합치면 '보내어지는 염소', 곧 '광야로 보내어지는 염소'라는 뜻이 되는 것이죠.
대제사장은 이 염소의 머리 위에 안수합니다.
온 백성의 죄를 고백하며 그 죄를 염소에게 '전가'합니다.
한 사람이 그 염소를 끌고, 광야로, 사람들이 살지 않는 빈 들로 데려가 그곳에서 풀어줍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의식을 명령하셨을까요?
이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아사셀 염소는 우리 죄인을 의미합니다.
속죄일에 한 염소는 회막에서, 동쪽을 향해 광야로 끌려 나갑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에서 멀어지는 길입니다.
이 모습은 낯설지 않습니다.
아니, 너무도 익숙한 모습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죄를 지은 그들은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났습니다.
에덴의 문은 동쪽을 향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인도 그랬습니다.
형제를 죽인 후, 그는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 동쪽, 놋 땅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린 그들은 동쪽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곧 우리가 아닙니까?
죄는 언제나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죄는 언제나 우리를 광야로, 혼돈과 고통의 자리로 내모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여기서 죄는 들짐승처럼 묘사됩니다.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조용히 숨어 있다가 덮치는 존재입니다.
원래 인간은 짐승을 다스리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죄를 다스리지 못하면, 우리는 들짐승처럼 됩니다.
아니, 들짐승보다 더 비참하게 전락하게 됩니다.
가인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랬습니다.
교만해졌을 때 그는 짐승처럼 들판에서 풀을 먹고 살게 됩니다.
짐승처럼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사셀 염소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들짐승처럼 되어버린 인간의 추락과 몰락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에서 쫓겨나고, 죄를 짊어진 채 광야로 쫓겨나는 존재.
사람이 죄를 다스리지 못하면, 죄가 사람을 다스립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바벨론 제국을 짐승으로 묘사합니다.
짐승을 다스려야 할 존재가 짐승을 섬기는 사람이 되지요.
짐승처럼, 아니 짐승보다 못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들짐승의 길을 누가 가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가셨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께서 우리 모든 죄를 짊어지신 채, 광야로 나아가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께 버림받은 절규를 외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지신 주님께서 우리 대신 멀리, 가장 멀리 쫓겨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죄의 짐을 지고 광야에 홀로 서 있는 분이 계십니까?
스스로가 짐승처럼 몰락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진리를 마음 깊이 새기십시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버림받으셨기에 우리는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다시 하나님 품으로, 그 은혜의 자리로 나아올 수 있습니다.
오늘, 그분 앞에 나아가십시오.
둘째,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보낸다는 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한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보십시오.
대제사장이 회막에서 나옵니다.
그는 방금 전, 지성소에서 하나님 앞에 향기 나는 연기를 피우며 속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거룩한 향기의 연기를 몸에 입은 채 성소를 지나, 성막 뜰로 나옵니다.
그는 이제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보내야 합니다.
이는 죄가 심판받는 장면입니다.
히브리서 9장은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성소에 들어가지만... 예수님은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고 말입니다. (히 9:25–26)
속죄를 위해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대제사장의 모습을 구름을 타고 세상 끝에 나타나실 심판주 예수 그리스도로 묘사합니다.
계속해서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심판. 아사셀 염소가 광야로 쫓겨나는 것처럼, 죄인은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멀어져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광야는 단지 메마른 장소가 아닙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자리입니다.
그것은 곧 지옥을 상징합니다.
죄가 머무를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 죄는 반드시 분리되고, 버려지고, 쫓겨나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두마리 염소 중 한 마리는 생명을 상징하는 피가 지성소에 뿌려지고 한 마리는 광야로 버려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두 번째 오실 때는 속죄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심판을 위한 재림입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요?
우리의 죄가 아사셀 염소처럼 떠나갔습니까?
아니면 아직 우리 안에 머물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는 더 이상 광야로 내몰리지 않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거부한 자는 죄와 함께 광야로, 지옥으로, 하나님의 얼굴이 없는 자리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이 은혜의 날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그 품으로 돌아오십시오.
죄를 버리고, 십자가 아래로 나아오십시오.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선택하십시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속죄일의 아사셀 염소를 함께 묵상했습니다.
그 염소는 죄를 지고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멀어지는 자, 죄를 지고 버림받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복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염소처럼,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광야로 나아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는 그 광야의 끝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분은 우리 대신 버림받으셨습니다.
왜요?
왜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을까요?
단 하나, 우리를 다시 부르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있도록.
우리가 그 얼굴을 피하지 않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지금 주님은 부르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대신해 죄를 짊어졌으니, 너는 더 이상 죄 지고 방황하지 말아라."
"내가 버림받았으니, 너는 영원히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
오늘 이 부르심에 응답하십시오.
광야에 있지 마십시오.
지금 돌아오십시오.
죄의 짐을 내려놓고 그분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십자가가 열어 놓은 길, 그 길은 광야에서 생명으로, 심판에서 구원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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