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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설교

그 사랑에 응답하십시오. (레 16:6~10)

by 말씀고 2025. 4. 15.

그 사랑에 응답하십시오

레위기 16장 6~10절


요약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약 속죄일 제사의 그림자를 완성하며, 그분은 죄 없으신 대제사장이자 친히 제물이 되어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이 은혜는 단순히 관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깊이 자각하고 진정으로 회개할 때 비로소 우리 안에 임한다.
고난주간을 지나며 우리는 다시 십자가 앞에 서서 회개의 고백으로 그 사랑에 응답해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는 고난주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며, 그 사랑과 은혜가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레위기 16장의 속죄일 의식입니다.
이 말씀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고난주간을 보내는 우리에게 참으로 깊은 의미를 전해주는 귀한 본문입니다.
어제 우리는 대제사장이 속죄일 제사를 드리기 전, 거룩한 세마포 옷으로 갈아입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화려한 대제사장의 옷을 벗고, 가장 소박하고 단순한 세마포 옷으로 갈아입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겉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는 그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옷은 거룩함의 상징이며,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겸손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오늘은 그 거룩한 옷을 입은 대제사장이 드리는 속죄 제사에 대해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대제사장은 먼저 수송아지를 잡아 자신과 제사장 가문을 위해 속죄합니다.
그리고 두 마리 염소를 이스라엘 온 백성을 위한 속죄 제물로 준비합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두 마리 염소 중 단 한 마리만 제단에 바쳐진다는 사실입니다.
한 마리는 여호와께 드려지고,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로 광야로 보내집니다.
그러나 이 모든 속죄 의식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그렇습니다.
대제사장의 속죄, 수송아지의 피, 염소의 희생... 모두가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고대의 속죄 의식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첫째, 속죄일의 속죄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약의 제사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하나하나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고, 그것은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속죄일의 제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속죄일의 제사는 먼저 대제사장 자신을 위한 속죄로 시작됩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이었지만, 그 역시 죄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온 이스라엘을 위한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죄를 속하기 위해 수송아지를 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론과는 전혀 다른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죄가 없으신 대제사장,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과 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시기에, 자신의 죄를 속하기 위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히브리서 7장 2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놀라운 사실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시지만, 단순히 제사를 집전하신 분이 아니라 그 자신이 친히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대제사장이 직접 자기 몸을 내어주셔서 우리를 속죄하신 그 사랑 말입니다.
성경은 죄를 빚으로 비유합니다.
잘못은 반드시 갚아야 할 빚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보응’이라 부릅니다.
이러한 개념은 속죄제사 안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특히 속죄제사의 하위 개념인 속건제사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죄에 대해 반드시 보상하게 합니다.
그만큼 죄는 대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속에서도 우리는 이 진리를 만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 6:12)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면 '우리의 빚을 용서해 주옵소서'입니다.
구약의 제사에서는 죄 지을 때마다 짐승을 잡아 드려야 했습니다.
그 제물은 값비싼 희생이 따르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더 이상 반복적인 제사가 필요 없습니다.
단번에, 영원히, 완전하게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시고, 동시에 속죄제물이 되신 분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그 모든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이 고난주간, 그 은혜를 다시 깊이 붙드시기 바랍니다.
반복되는 죄책감에 눌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이루신 그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충분합니다.
이 은혜 앞에 우리도 다시 무릎 꿇고, 감사의 삶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둘째,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우리 죄를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 그저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는 단지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회개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고통의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바로 우리 죄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속죄제사는 자동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속죄 제사를 드릴 때, 백성들에게도 분명히 요구되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 곧 자기 죄를 자백하고 슬퍼하며 돌이키는 것입니다.
레위기 16장 3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너희에게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여기서 '스스로 괴롭게 한다'는 말은 단순한 슬픔의 표현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깊이 인식하고, 마음을 낮추며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 장면에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을 보시고, 요나를 보내 경고하십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합니다.
요나 3장 5절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지라."
자신을 낮추고, 죄를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회개의 모습입니다.
 

속죄제사는 회개가 동반될 때에만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회개 없는 속죄는 없습니다.
레위기 1장 4절의 말씀처럼,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안수는 제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행위입니다.
이 말은 곧, "내가 이 죄의 당사자입니다. 이 피는 내가 흘려야 할 피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회개란, 죄를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레위기 5장 5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민수기 5장 6절과 7절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악하고 잔인한 자들이었지만, 그들이 마음을 찢고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요나서 3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 앞에 서 있습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외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회피할 수도 없습니다.
그분의 피가 우리를 속죄하시기 위해 흘려졌다면, 우리는 그 앞에서 머리 숙여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가 진정한 돌이킴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마음속에 남모르게 묻어둔 죄가 있으십니까?
오래된 습관의 죄, 잊은 척 외면했던 마음의 어두움이 있으십니까?
고난주간, 이 십자가의 계절은 그 모든 죄를 들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입니다.
 
스스로 괴롭게 하십시오. 진정으로 마음을 찢고, 다시 주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주님은 그 회개를 기뻐 받으시고, 니느웨에 내리려 했던 심판을 거두셨듯 우리에게도 다시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의 회개는 심판을 멈추고, 은혜를 시작하게 합니다.
이 은혜 앞에 여러분 모두가 깊이 들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속죄일의 제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얼마나 크고 완전한 은혜인지 다시금 마음에 새겼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하지만 그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려면 우리의 마음은 반드시 주님 앞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회개 없는 속죄는 없습니다.
자복 없는 용서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의 깊은 곳을 보고 계십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진심으로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재앙 대신 자비를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고난주간, 십자가 앞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다시 열어드리시기 바랍니다.
묵혀둔 죄, 말 못할 상처, 스스로 정죄했던 지난날의 어두움까지 그 모든 것을 들고 십자가 앞에 서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그 고백 위에 주님의 피가 임합니다.
그 피는 오늘도 살아 역사하여, 여러분을 정결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부르십니다.
"내가 너를 위해 피 흘렸노라. 너는 이제, 나를 위해 살아주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이 고난주간에,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다시 한 번 결단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다시 믿음으로 서고, 다시 은혜로 살아가십시오.
주님께로, 다시. 주님의 마음으로, 다시. 주님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