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으십시오.
레위기 16장 23~28절
요약
레위기 16장의 속죄일 제사는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그리고 복음의 핵심을 예표하며, 우리는 본래 진노의 자녀였으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양이 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옷을 갈아입고 양을 번제로 드리는 장면은, 속죄받은 자가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회심과 변화의 상징이며, 이는 물과 성령의 세례로 연결됩니다.
성령의 불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께 향기로운 산 제물로 드리게 하며, 우리는 이 은혜 안에서 날마다 새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성도님께서 제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레위기 16장에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그 장면을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으로 해석하는 게 너무 지나친 해석은 아닐까요? 혹시 그런 해석은 이단들이 자주 하는 방식 아닌가요?"
참 귀한 질문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질문을 들어보셨거나, 마음속에 품고 계셨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베드로 후서 1장 20절에서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곧, 자기 생각대로, 자기 관점으로만 성경을 해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성경 해석에는 분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을 대제사장의 성소 출입과 연결해서 이해하는 이 해석은 히브리서 안에 깊이 담겨 있는 신학적 묵상입니다.
히브리서 9장을 보면, 11절과 12절은 예수님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신 사건을, 곧 승천을 대제사장의 사역과 연결시켜 설명합니다.
그리고 25절부터 28절까지는 지성소에서 다시 나오는 장면을 예수님의 재림과 연결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마태복음 25장 31절에서 33절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이 말씀은 레위기 16장에 나오는 속죄일의 두 염소 제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두 염소를 제비뽑아 하나는 여호와께 속한 제물로, 다른 하나는 광야로 보내어 백성의 죄를 담당하게 하지요.
그리고 속죄일에는 번제도 드려지는데, 흥미롭게도 그 번제의 희생 제물은 '양'입니다.
염소가 아닌 '양'이 드려진다는 점, 여러분 눈여겨보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번제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을 함께 붙잡고 오늘 말씀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은혜의 깊이로 우리를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도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우리를 양이라고 부릅니다.
시편 95편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또 시편 100편 3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양. 얼마나 귀한 신분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그랬던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레위기 16장, 속죄일의 제사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합니다.
대제사장이 양과 염소를 구별하지 않고, 두 마리 염소를 구분합니다.
왜일까요?
성경은 염소를 종종 악한 자의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에스겔 34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스가랴 10장 3절에서는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고 경고하십니다.
심지어 레위기 17장 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것이니라..."
여기서 '숫염소'는 우상, 더 나아가 귀신적 존재로 상징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양 된 우리도, 한때는 염소와 같았고, 더 나아가 죄와 우상, 사탄 아래 살던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은 이것을 분명히 말합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원래부터 하나님의 집에 속한 양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로 하나님의 양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염소 같은 죄인에서 양 같은 백성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속죄일의 번제 장면은 이 놀라운 은혜를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대제사장은 속죄 제사를 마친 후, 흰 세마포를 벗고 다시 목욕을 합니다.
그리고는 화려한 대제사장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그 후, 하나님 앞에 양을 번제로 드립니다.
염소가 아닙니다. 양입니다.
이 모든 순서 속에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피, 우리를 대신하여 드려진 양, 그리고 우리 안에 시작된 새 생명 말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 이하 말씀은 이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나는 늘 교회에 다녔기에 양인가요?
말씀을 듣고 기도한다고 해서, 나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양이었을까요?
오늘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너는 지금 진리 안에 있는가? 은혜 아래 있는가?"
동시에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너는 더 이상 염소가 아니다. 너는 이제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이다."
이 정체성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양으로 오늘 하루도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영생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속죄일의 제사는 두 가지 큰 흐름으로 나뉩니다.
속죄제사와 번제제사입니다.
속죄제사에서는 피가 가장 중요합니다.
대제사장은 흰 세마포 옷을 입고,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를 이룹니다.
죄가 사함 받는 자리, 생명이 회복되는 자리입니다.

그 후 대제사장은 다시 목욕을 하고, 이전의 흰 세마포가 아닌 화려한 대제사장 복장으로 갈아입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장면은 단순한 의복의 변화가 아닙니다.
속죄를 받은 자가 이제 새롭게 변화된 존재로 살아가야 함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이것은 후에 세례 의식으로 발전합니다.
세례는 단지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의식이 아니라,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사건, 죽고 다시 사는 사건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2~24)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진정한 회심입니다.
속죄받은 자는 반드시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물'로 상징되는 정결뿐 아니라, '불'로 상징되는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통해 완성됩니다.
속죄제 이후, 대제사장은 번제제사를 드립니다.
이 제사에서 중요한 것은 피가 아닙니다.
불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속죄 제물의 기름을 제단에서 불사를 것이요..."
이 '불사르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향을 피우다', '연기를 내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향기가 되어 하나님 앞에 올려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계시록 8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불에 태워 연기로 올라가는 양의 제사처럼, 우리의 존재도 성령의 불에 태워져 기도로, 예배로, 삶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입니다.
레위기 9장 24절을 보면,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또 역대하 7장 1절에서는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그리고 마침내, 사도행전 2장에서 이 불은 성령의 불로 나타납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사랑하는 여러분,
제단의 불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성령께서 임하실 때, 그분은 우리를 태우시고,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살아 있는 제물로 빚어 가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나 용서받은 사람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내 삶 속에 성령의 불이 임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떤 제단 위에 서 있는가?
내 삶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고 있는가?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결단이 있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성령의 불로 태워져, 하나님 앞에 올려드려지는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드리는 삶,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삶, 하나님께 향기롭게 올려지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한때 진노의 자녀요, 염소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속죄받았고, 성령의 불로 우리는 거듭난 존재, 하나님의 양, 하나님께 올려지는 산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속죄일 제사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묻습니다.
여러분은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셨습니까?
여러분 안에 성령의 불은 타오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고 있습니까?
이제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
다시 한번 그 은혜 앞에 서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성령의 불로 다시 타오르십시오.
하나님께 향기롭게 드려지는 삶으로 걸어가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부르심 받은 이유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의 길입니다.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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