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
레위기 25장 8~12절
요약
희년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하며, 인간은 그분의 청지기로서 책임 있게 다스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희년의 정신을 선포하셨을 뿐 아니라, 그분 자신이 희년이 되어 우리에게 자유와 회복을 주셨습니다.
희년은 단지 과거의 제도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임한 복음의 현실이며, 우리도 그 희년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에는 참 특별한 제도가 하나 있습니다.
희년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희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그렇습니다.
자유를 공포하라
이것이 희년의 시작입니다.
여러분,
잠시 눈을 감고 옛날 이스라엘 사람 한 명이 되어 보십시오.
어느 날, 삶의 중심이 무너졌습니다.
사업이 기울고, 사랑하는 가족이 병들고, 일할 힘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땅을 팔고, 자신마저 다른 집안의 종이 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평생의 한 번 뿐인 기회일지라도, 오직 한 번 뿐일지라도 그는 희년을 기다립니다.
희년이 되면 잃어버린 땅이 돌아오고, 종 되었던 인생이 다시 자유를 회복합니다.
마치 아무리 긴 겨울도 결국 봄을 맞이하듯, 희년은 회복의 시간, 자유의 시작입니다.
희년은 단순한 제도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주신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희년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첫째, 희년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희년의 정신은 단순한 경제 제도가 아닙니다.
그 출발점은 분명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그분의 청지기라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레위기 25:23)
이 한 구절 안에 희년의 근본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토지는 내 것이라"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맡겨진 것을 잘 다스리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희년의 삶입니다.
욥의 이야기는 이 진리를 너무도 분명히 보여줍니다.
모든 것을 가졌던 사람, 그리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
그 욥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기 1:21)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희년의 고백입니다.
사람들은 때로 희년을 잘못 이해합니다.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이 공산주의와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청지기에게 책임을 맡기셨고, 그것을 잘 감당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달란트 비유를 보십시오.
맡은 것을 묵히는 것이 미덕이 아닙니다.
맡은 것을 잘 활용하고, 열매를 맺는 것이 주인의 기쁨이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꾸중을 들은 까닭은 게으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희년의 정신은, 맡겨진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다스리는 책임감 있는 나눔입니다.
단순한 평등이 아니라, 거룩한 청지기의 삶입니다.
실제로 이 희년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는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희년의 정신이 실현된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초대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었습니다. (행 2:44–45)
그들은 희년을 외치지 않았지만, 희년의 삶을 살았습니다.
복음이 그들 안에서 그렇게 역사한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행 20:35)
복음은 그렇게 살게 합니다.
우리가 청지기로 부름받았다는 것, 그것이 희년의 첫 번째 정신입니다.
그 믿음 위에 희망이 세워집니다.
둘째, 희년은 복음의 예표이며, 예수님의 사역 선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회당에서 성경을 펼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61장의 말씀을 낭독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19절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셨도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이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서의 예언, 곧 희년에 대한 말씀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 자신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말씀을 전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몸으로 사셨습니다.
가난한 자를 찾아가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으며, 눈 먼 자의 눈을 뜨게 하시고, 눌린 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셨고, 배제된 자를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짐을 지시고, 가장 철저한 눌림과 갇힘 가운데서도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희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희년을 선포하신 분이 아니라, 희년 그 자체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습니다.
희년의 정신을 가장 먼저, 가장 깊이 실천하신 분이 누구일까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본래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점점 노예가 되어갔습니다.
요셉이 먼저 팔려갔고, 그 후손들이 애굽의 권력 아래 종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회복시키신 분이 누구입니까?
모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것은 단지 탈출이 아닙니다.
회복입니다. 자유입니다. 희년입니다.
희년은 단지 제도나 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며,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희년은 지금, 여기에 임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희년은 단지 과거의 제도가 아닙니다.
희년은 지금, 우리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의 것이 우리 것이 아님을 압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로 부름받았습니다.
맡겨진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며, 나눔과 회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한때 포로 되었던 자였습니다.
죄에 눌려 살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풀어주셨고, 우리의 눈을 뜨게 하셨고,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희년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제 우리도 그 희년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처 입은 자에게, 눌린 자에게, 소망 잃은 자에게 예수님 안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희년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 위에 예수님의 복음이, 희년의 자유와 회복으로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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