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패배하실 수 있습니까?
창세기 32:24-32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패배하셨다? 말이 됩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 나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 한마디로 우주를 움직이시는 하나님께서 야곱과 씨름하시다가 패배하셨다고 합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형 에서를 속이고, 외삼촌 라반과도 치열한 머리싸움을 하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심지어 이제는 형이 자기를 죽일까 봐 두려워 벌벌 떨고 있는 약한 존재 아닙니까?
그런데 그 야곱에게 하나님이 지셨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일부러 지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여전히 자기 힘으로 인생을 살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를 만나 주시고, 그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일부러 져 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이 장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인간에게 지는 것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십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서의 패배가 곧 인류를 위한 승리입니다.
오늘 본문의 얍복강 씨름 사건은 단순한 씨름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친히 낮아지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결국 십자가에서 완성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미리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간교함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면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오래전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아들아, 네가 누구냐?"
그때 야곱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야곱은 형의 축복을 가로채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아버지 이삭을 속입니다.
야곱이 이삭을 속이는 장면은 마치 창세기 3장에서 뱀이 하와를 속이는 장면과도 같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뱀'은 히브리어로 '나하쉬 (נָחָשׁ)'라고 하는데요, 이 단어의 어원을 보면 '점치다', '속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참고: '나하쉬 (נָחָשׁ)'는 뱀을 뜻하는 명사인데, '나하쉬 (נחש)'라는 동사도 있는데, 이는 '점을 치다''주술을 행하다'는 의미입니다. 고대 점술에는 속이는 행위가 있기에 '속이다'라는 의미와도 연관이 됩니다.)
뱀은 어떤 존재입니까?
속이는 존재, 거짓을 퍼뜨리는 존재입니다.
점쟁이들이 점을 치면 맞는 것 같지만 결국 사람을 속입니다.
우리는 야곱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고, 때로는 사람을 속이고, 나 자신을 속이며 살아갑니다.
창세기 31장을 보면,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도망칠 때 그의 아내 라헬이 ‘드라빔’을 훔쳐갑니다.
이 드라빔이 무엇입니까?
당시 점을 칠 때 사용하는 우상입니다.
스가랴 10장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들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라반이 왜 야곱을 속이고, 또 속이려 합니까?
그는 점을 치는 사람이고, 속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도 결국 똑같습니다.
형을 속이고, 외삼촌에게 속고, 또 속이면서 살아가는 모습, 이게 바로 '나하쉬 (נָחָשׁ)'의 인생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여러분,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모르셔서 물으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야곱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순간 야곱은 깨닫습니다.
과거 아버지 앞에서는 "나는 에서입니다"라고 거짓말했지만, 이제 하나님 앞에서는 더 이상 속일 수 없습니다.
그는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발꿈치를 잡는 자', 다시 말해 '남을 넘어뜨리는 자, 속이는 자'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을 보면, 뱀이 여자의 후손 발꿈치를 무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이 살아온 인생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납니다.
야곱은 뱀처럼 속이는 인생을 살아온 것을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속이고, 잡아당기고, 빼앗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 했던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하나님, 저는 야곱입니다. 이름처럼 속이는 자입니다. 뱀 같은 죄인입니다. 저는 제 힘으로 살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짜 나 자신을 인정할 때, 그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됩니다.
자신의 죄를 감추려 하면 할수록 인생은 더 복잡해지고 꼬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제가 죄인입니다"라고 솔직히 인정할 때,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그 순간부터 야곱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여전히 내 힘으로 살려고 합니다. 저는 여전히 세상의 방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려놓겠습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뱀의 간교함, 곧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질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이 장면도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야곱에게 간청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깊은 의도가 담긴 말씀입니다.
여기서 야곱의 반응에 주목해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시지 않도록 간절히 매달립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의 이 태도는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절박한 간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미 야곱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 28:1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이 약속을 믿고 있는지 시험하십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축복을 간청하며 끝까지 씨름합니다.
호세아 12장 4절에서는 이 장면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가 천사와 씨름하고 이기고 울며 간구하였으며."
야곱은 단순히 억지로 하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서 울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듣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끝까지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받습니다.
그 약속은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고전 15:3-4)
여러분,
우리는 이 약속을 얼마나 붙잡고 있습니까?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며 울며 간구했던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인생이 힘들고, 하나님의 약속이 멀게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더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야곱은 씨름을 통해 변화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바꾸십니다.
이전에는 '야곱' ‘속이는 자’이지만, 이제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죄의 다스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잡으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푸십니다.
결론: 새로운 이름, 새로운 인생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십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창 32:28)
야곱은 속이는 자이지만, 이제 그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가 됩니다.
그런데 잘 보십시오.
야곱이 하나님을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고, 자신의 본모습을 인정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의 옛 이름, 옛 모습, 옛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속일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새로운 이름,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삶 가운데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아멘.

얍복강가와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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