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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설교

간사함이 없는 사람 (창세기 28:10-22)

by 말씀고 2025. 1. 28.

간사함이 없는 사람

창세기 28:10-22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실까?"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하실까?"
우리의 인생은 때로 하나님이 멀게만 느껴지는 여정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찾아오십니다.
야곱은 그분의 약속과 임재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놀랍게도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과 연결됩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이 말씀은 단순한 칭찬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한마디를 통해 나다나엘의 정체성을 꿰뚫어 보십니다.
그리고 야곱의 이야기와 연결하여 중요한 영적 메시지를 던지십니다.
야곱은 단순한 한 인물이 아닙니다.
야곱은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이름입니다.
야곱처럼 우리는 연약하고, 실패하며, 죄 가운데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찾아오십니다.
야곱의 벧엘 사건과 나다나엘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찾아오시는 모습을 묵상하려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우리에게 찾아오신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서야 할까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십시오


벧엘에서 하나님은 죄인인 야곱을 찾아오십니다.
야곱은 도망자입니다.
속임과 간사함으로 형 에서를 속이고, 가족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런 야곱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네가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리라."
그런데 야곱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조건을 겁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지키시고, 떡과 옷을 주시고, 평안히 돌아오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도 간사하게 계산적이고 조건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반면,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나다나엘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전했을 때, 그는 처음에는 의심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는 즉시 깨닫고 회개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그의 의심과 회의는 예수님 앞에서 순식간에 변했습니다.
 
나다나엘에게 간사함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시편 32편은 이를 명확히 설명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1-2)
간사함이 없다는 것은 죄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시편 32:5)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지만, 자신의 간사함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조건으로 바꾸려 합니다.
반면 나다나엘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간사함을 버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벧엘은 야곱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신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성경에서 벧엘은 북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을 상징하는 장소로 변질됩니다.
죄를 자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히 여기고, 자신의 죄악을 감추며 살아갈 때 우리의 신앙은 벧엘처럼 타락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분 앞에 우리의 죄를 숨기지 않고 고백하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경외감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5)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거룩 앞에 서는 우리는 죄를 자백하며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약속을 붙들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십니까?
특히 그 약속이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 그 약속을 믿고 신뢰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야곱도 그랬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이제 너의 하나님이 되겠다. 내가 너와 함께 있고, 너를 어디로 가든지 지키며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그런데 야곱은 그 약속을 곧바로 믿지 못합니다.
그는 조건부 서약을 합니다.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오면, 그때야 비로소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야곱의 이 반응은 우리를 닮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도 확신하지 못하고, 마치 조건을 내거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성경학자인 월터 브루그만은 야곱의 이 모습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야곱의 반응은 믿음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흥정꾼 같은 모습입니다."
야곱은 벧엘의 약속 앞에서도 완전한 신뢰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에 등장하는 나다나엘은 다릅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올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왜 나다나엘이 참 이스라엘 사람일까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묵상하며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너를 보았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유대인들에게 무화과나무 아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나다나엘은 메시야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붙든 사람입니다.
메시아 시대를 예언한 미가서 4장 4절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메시아 시대의 약속을 묵상하며 기다리던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은 "네가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참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사람입니다.
간사함이 없다는 것은 완전무결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붙드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간사(간교)한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토록 했습니다.(창 3:1)
이러한 뱀과 같은 불신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메시지가 주어집니다.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하늘에서 우리를 찾아오신 메시아를 믿고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리라."
이 약속을 신뢰하며 우리의 삶 속에서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성경을 묵상하는 나다나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