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만는 은혜의 샘물
창세기 16장 1-14절
요약
🌿 우리의 조급함과 인간적인 방법은 실패로 이어지지만,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회복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 하갈이 “엘 로이(나를 보시는 하나님)“를 만났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과 눈물을 보시고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 하나님은 메마른 인생을 생명의 샘으로 바꾸시는 분이며, 우리도 그 은혜를 받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기다림의 자리에서 조바심을 느낍니다.
그 순간 내 힘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죠.
이 모습은 성경에서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창세기 16장의 사래와 아브람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사래는 자녀가 생기지 않자, 여종 하갈을 통해 가정을 이루려 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자세히 보면, 창세기 3장의 에덴동산 장면이 떠오릅니다.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건네는 모습과 사래가 아브람에게 하갈을 주는 모습은 닮았습니다.
둘 다 하나님의 지혜와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죠.
그런데 창세기 2장을 자세히 보면 중요한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여자를 만드셨다'는 표현이 있는데, 여기서 "만드셨다 (בָּנָה 바나) "는 단어는 '건축'을 의미합니다.(창 2:22)
(참고: 'בָּנָה 바나'는 '짓다. 세우다. 건축하다'를 뜻합니다.)
즉 돕는 배필은 단순한 창조물이 아니라, 아담을 위한 또 하나의 "에덴동산"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에덴동산"은 단순한 공간이 아닙니다.
샘물이 솟아나는 기쁨과 생명의 장소입니다.
"에덴 עֵדֶן"이라는 이름의 뜻이 '기쁨'입니다.
잠언 5장 18절은 아내를 "네 샘"으로 비유하며, 기쁨과 축복의 동산으로 표현합니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잠언 5장 15절은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돕는 배필은 아담에게 주어진 "제2의 에덴동산"인 셈이죠. (전 9:9, 시 128:3, 잠 18:22)
그런데 사래는 하나님께 맡기기보다는,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새로운 에덴동산을 건축해 보려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갈등과 괴로움입니다. 에덴이 아닙니다.
인간의 계획은 종종 실패로 끝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히 실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창세기 16장은 우리의 실패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과 회복을 이루어 가시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실패 속에서도 은혜로 새로운 길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16장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는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깊은 은혜와 회복의 능력을 함께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광야에서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
삶을 살다 보면 누구나 광야와 같은 시기를 겪습니다.
고통과 상처 속에서 스스로 "아무로 나를 이해하지 못해"라고 외치며 깊은 절망을 경험할 때가 있죠.
창세기 16장에서 하갈이 겪었던 상황이 바로 그렇습니다.
사래의 계획은 실패로 끝이납니다.
사래는 기다리지 못한 결과로 여종 하갈을 학대했고, 하길은 고통 속에 광야로 도망칩니다.
이 장면은 마치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폭력을 가한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시기와 다툼이 죄의 본질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동일하죠.
그런데 하갈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아십니까?
"나그네" 또는 "이주자"를 뜻합니다.
하갈은 애굽 출신의 여종이자 이방인입니다.
그녀는 광야에서 철저히 홀로 입니다.
누구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고, 그녀를 위해 울어 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3장 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는 모습은 마치 애굽의 바로가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광야에서 도망치며 쓰려져 울부짖던 하갈을 향해 하나님은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피가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듯이, 하갈의 울음소리도 들으십니다.
이 장면은 출애굽기의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학대 속에서 부르짖을 때 그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출 2:23)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에도 광야의 외로움과 고통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여러분의 부르짖음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고통 속으로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
광야는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반드시 응답하시며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회복의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삶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광야로 들어서게 됩니다.
상처와 아픔 속에서 방향을 잃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먼저 다가 오셔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사실 하갈은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임신하자 여주인인 사래보다 우월하다는 듯 사래를 멸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실패보다 큽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하갈을 찾아오십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 질문은 단순한 정보 확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황을 직면하게 함으로써 회복의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회복의 시작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옵니다.
하갈은 여주인 사래를 피해 도망쳤지만, 광야의 샘 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고통과 눈물을 아시며 말씀합니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내가 네 후손을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이는 단순히 순종을 강요하는 명령이 아닌, 약속과 보호를 담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억압받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그들의 삶에 새로운 소망을 심으십니다.
하갈은 이 놀라운 만남을 통해 하나님을 "엘 로이" 곧 "나를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을 만난 장소를 주목해야 합니다.
샘 곁에서 하갈을 만나셨죠.
샘은 '에덴동산'과 '성전'을 상징하는 은유 공간입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강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창 2:10)
거대한 샘이 에덴 동산인 셈이죠.
사래는 자신의 계획과 지혜로 하갈을 샘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하지만, 하갈을 온전히 회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샘 곁에서 하갈을 만나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에덴 동산의 회복을 봅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을 야곱의 우물 곁에서 만나신 예수님을 떠오르게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기쁨을 상실한 메마른 샘과 같은 여인이지만, 예수님은 그녀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약속하십니다.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후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예수님을 전합니다.
메말라 물이 없는 샘과 같은 여인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샘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는 곳은 우리의 고통과 눈물이 있는 자리입니다.
그 공간이 회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회복의 샘이 되게 하십니다.
영혼이 메마른 이웃에게도 생명의 샘물이 흘러가도록 우리 삶을 사용하십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광야의 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고, 고난과 상처로 가득한 시간 속에 홀로 내버려진 것 같은 순간이 있죠.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만남의 공간이며, 회복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엘 로이" 곧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갈의 눈물을 보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눈물도 보고 계십니다.
우리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 상처와 아픔을 결코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누간가는 메마른 영혼으로, 더 이상 기쁨이 솟아나지 않는 샘과 같은 인생을 살고 계신가요?
그러나 오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생수의 샘 곁에서 여러분을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과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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