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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설교

구별된 자, 생명을 전하는 자 (민 6:1~12)

by 말씀고 2025. 4. 29.

구별된 자, 생명을 전하는 자.

민수기 6장 1~12절

 

요약

하나님은 나실인 제도를 통해,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된 자로 부르셨습니다.

구별된 삶이란 하나님을 신뢰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며, 생명을 전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거룩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특별히 구별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사람은 세상이 말하는 특별함과는 다릅니다.

민수기 6장을 보면,

하나님은 '나실인'이라는 이름으로 한 부류의 사람을 따로 세우셨습니다.

 

나실인, 그것은 곧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된 사람을 뜻합니다.

원래 구별된 자들은 제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사장이 아닌 일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원하면 스스로 나실인 서원을 하고, 대제사장처럼 거룩하고 헌신된 삶을 살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먼 옛날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베드로전서 2:9)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나실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구별된 자로 살아가야 할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민수기 6장을 통해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시대 가운데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품고 함께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민수기 6장을 보면,

나실인이 지켜야 할 규칙 가운데 하나는 머리카락을 깎지 않고 그대로 기르는 것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은 인간이 자연 그대로, 하나님께 의존하여 살아가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위나 칼이 없는, 문명화되지 않은 원초적 상태에서 살았습니다.

자연 그대로,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살던 존재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이 생명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나무였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란, 인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을 상징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거나 지혜를 쌓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지혜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나실인의 머리카락도 이와 같습니다.

자기 힘이나 자기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는 표시였습니다.

성경에는 대표적인 나실인이 있습니다.

삼손입니다.

삼손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머리카락에서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로부터입니까?

삼손의 머리카락은 생명나무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상징하는 표지였습니다.

머리카락 자체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신뢰하라는 표지였던 것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의 삶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힘을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맙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다시 이렇게 권면합니다.

잠언 3장 5절부터 7절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구별된 삶의 첫걸음입니다.

내 힘, 내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생명과 지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나실인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둘째,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나실인이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규칙은,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실인에게 포도주를 금지하셨을까요?

우리는 성경 속 한 인물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노아입니다.

노아는 홍수 이후 새로운 세상을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새로운 아담이었죠.

그러나 새 아담인 노아도 옛 아담처럼 넘어지고 맙니다.

포도주를 마시고 스스로 수치를 드러냅니다.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수치를 드러냈고,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수치를 드러냈습니다.

모습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또 다른 장면도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술에 취한 상태로 다른 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후에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행동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레위기 10장 8~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떻게 죄에 빠지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에베소서 5장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에베소서 5:18)

그렇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충만히 거하실 때만이 죄를 이기고 거룩을 지킬 수 있습니다.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십시오.

욕망에 끌려 다니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십시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구별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생명을 전하는 삶, 복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실인이 지켜야 할 마지막 규칙은 시신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신은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성경에서 저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실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죽음과 저주를 가까이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명과 축복을 상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 그리고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때로 죽이는 말과 행동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우리,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는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잠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잠언 18:21)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잠언 12:18)

"온순한 혀는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5:4)

 

우리의 혀, 우리의 입술은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상처를 주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비난하고 정죄하는 말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민수기 6장에서는 나실인 규례 다음에, 제사장의 축복이 나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구별된 사람은 생명을 살리는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민수기 6장 24~26절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사람들을 살리는 말,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큰 살리는 말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소식을 전할 때, 우리는 진짜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 가운데 구별된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 성령 충만한 삶,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무너뜨리고, 죽이는 일에 바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어두운 세상 속에, 생명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를 신뢰하라."

"성령으로 충만하라."

"생명을 전하는 자가 되라."

여러분, 주님의 이 부르심 앞에 응답하십시다.

주님, 제가 그렇게 살겠습니다.

주님, 제가 구별된 사람으로, 복을 전하는 사람으로 서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결단합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며, 생명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기를!

나실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