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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설교

하나님 앞에서 정체성을 찾다 (출 3:1-12)

by 말씀고 2025. 2. 20.

하나님 앞에서 정체성을 찾다.

출애굽기 3:1-12

요약
📖 모세의 이름과 정체성
출애굽기 초반부에서는 많은 인물들이 이름 없이 등장하지만, '모세'라는 이름만은 특별히 기록되며 그의 정체성과 사명을 상징합니다. 모세라는 이름은 이집트어로 '아들'을 의미하지만, 어떤 신의 이름도 붙지 않아 '모세는 누구의 아들인가?'라는 질문을 남기며,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 그의 참된 정체성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모세'는 히브리어로 '건져내다'라는 뜻을 가지며, 그는 단순히 물에서 건짐받은 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낼 사명을 부여받은 지도자가 됩니다.

출애굽기 초반부를 읽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제외하면, 모세의 부모도, 그를 돌보던 누이도, 심지어 바로의 딸조차 이름 없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드디어 한 이름이 기록됩니다.
모세가 성장하여 바로의 딸에게 입양될 때입니다.
그녀는 '그를 모세라 부르겠다'고 말합니다.
이유도 덧붙입니다.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이름 없는 많은 인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이름, '모세'.
성경은 왜 이 이름을 특별히 기록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이름을 단순한 호칭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과 사명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이름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걸까요?
오늘 우리는 '모세'라는 이름이 주는 깊은 의미를 함께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모세라는 이름의 의미: 그는 누구의 아들인가?

 
출애굽기에서 산파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성경은 다른 인물들의 이름을 숨기다가, 유독 이 이름을 강조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모세라는 이름에는 그의 정체성과 사명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라는 이름은 이집트어로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집트의 왕들, 즉 바로들의 이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투트모세'는 '투트 신의 아들', '아흐모세'는 '달신 아(ah)의 아들', 우리에게 익숙한 '람세스'는 '태양신 라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모세라는 이름에는 앞에 어떤 신의 이름도 붙어 있지 않습니다.
마치 빈칸처럼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모세는 누구의 아들인가?"
이것은 모세의 인생을 관통하는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마주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그는 동족 히브리 사람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모습을 봅니다.
마침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인을 때리고 있습니다.
모세는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사방을 살핀 후, 애굽 사람을 처치하고 모래 속에 묻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래에 묻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모세가 애굽 왕궁의 특권을 그대로 누리고 있었다면, 왜 숨겼을까요?
 
다음 날,
그는 다시 그곳을 찾습니다.
이번에는 히브리 사람들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모세가 다가가서 말합니다.
"왜 동족을 때리는 것이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습니다.
"당신이 뭔데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요? 어제 애굽 사람을 죽이더니 나도 죽일 셈이요?"
이 순간, 모세는 깨닫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의 아들인가?"
애굽에서도, 히브리 공동체에서도 그는 설 자리를 잃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그를 반역자로 여겼고, 히브리 사람들도 그를 자기들 중 하나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국 모세는 도망자가 됩니다.
그는 애굽에서도, 히브리 공동체에서도 버림받고 미디안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미디안에서 그는 한 여인을 만나 결혼합니다.
아들을 낳고, '게르솜'이라는 이름을 짓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나는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모세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애굽에서도, 히브리 공동체에서도, 그리고 미디안에서도 그는 나그네입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어느 날, 떨기나무 가운데서 불꽃이 타오릅니다.
그 불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이름을 두 번 부르시는 순간은 아주 특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며, 그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십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모세는 잊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을 맡기시자, 모세는 망설입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3:11)
모세는 여전히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나는 도망친 사람인데요."
"히브리 사람들에게도 애굽 사람들에게도 거부당한 사람인데요."
"지금은 미디안에서 겨우 목자로 살고 있는데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른 답을 주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 3:12)
 
모세가 묻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네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가이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의 아들입니까?"
 
사람들은 우리를 여러 가지 기준으로 평가하려 합니다.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가진 것이 많으냐, 적으냐.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우리도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세상의 기준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 자녀다."
 
우리는 때때로 모세처럼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실패했을 때, 인정받지 못할 때, 낯선 곳에서 방황할 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디에 있든,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확실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내 자녀"라고 부르십니다.
오늘, 그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응답하시겠습니까?
 

둘째, 모세의 이름의 의미: 끌어내는 사람

 
출애굽기 2장 10절을 보면 모세 이름의 또 다른 의미가 등장합니다.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이것은 히브리어적인 의미입니다.
모세라는 이름이 히브리어로 '건져낸다, 끌어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바로의 딸은 어떻게 히브리어 뜻을 알았을까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모세의 유모는 다름 아닌 그의 친어머니 요게벳입니다.
공주는 모세를 키우며 그의 유모였던 히브리 여인의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대화가 오갔을 수도 있습니다.
"공주님, 애굽 왕족의 이름에는 ‘모세’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모세’는 ‘건져낸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좋겠네. 내가 아이를 물에서 건져냈으니 ‘모세’라고 하면 딱 맞겠군."
이렇게 우연히 정해진 듯한 이름.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이름 속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 두셨습니다.
모세라는 이름은 단순히 그의 과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이름은 그의 미래를 예언하는 이름입니다.
모세는 ‘끌어낸 사람’이 아닙니다.
물에서 끌어낸 사람은 바로의 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이름을 통해 그가 장차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끌어내는 사람이 될 것임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모세라는 이름은 사명과 연결된 이름입니다.
 
모세가 이러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입니다.
어느 날,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타고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 불꽃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를 때, 이름을 두 번 부르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셨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셨습니다.
바울이 회심할 때도 "사울아, 사울아"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명을 맡길 때 하시는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부름을 통해 모세에게 그의 정체성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너는 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너는 사명을 가진 사람이다"
이제 모세는 깨닫습니다.
"끌어냄을 받은 자" 가 아니라 이제는 "끌어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모세처럼 이름 속에 사명이 담긴 분이 또 한 분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을 보면,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이름을 직접 알려줍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여호수아 יְהוֹשׁוּעַ 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여호수아의 원래 이름은 '호세아 הוֹשֵׁעַ '입니다.
'호세아'는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그의 이름을 '여호수아'로 바꿉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시간이 지나 축약형인 '예슈아 יֵשׁוּעַ'가 되고, 헬라어로 '예수'가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단순한 이름이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실 분이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건져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건져내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이끌었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이 이름 속에는 우리의 정체성과 사명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죄에서 건져진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또한 누군가를 건져낼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끌어내야 합니다.
죄에서 끌어내야 합니다.
절망에서 끌어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삶에서 끌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이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는 사명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내가 너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른다."
여러분은 응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삶을 통해 누군가를 하나님께로 끌어내는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모세야, 모세야"
"그리스도인이여, 그리스도인이여"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나는 누구인가?

 
모세는 평생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맸습니다.
애굽에서 왕자로 자랐지만 애굽 사람이 아니었고, 히브리인의 피를 가졌지만 그들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미디안에서는 나그네처럼 떠돌았고, 그저 도망자로 살아가며 조용히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그의 이름을 다시 부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누구냐? 너는 나의 백성이다. 나의 아들이다"
"너는 나의 부르심을 받은 자다. 너는 사명을 가진 사람이다." 
모세는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너는 누구냐?"
세상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시겠습니까?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떨기나무에 임하신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