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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설교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창세기 39:1-6)

by 말씀고 2025. 2. 6.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창세기 39:1-6

요약
📖 요셉과 모세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보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약속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사람들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고, 시련을 통해 단련되며 정금 같은 믿음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신뢰하며, 모든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순간을 맞이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내 힘과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실력이나 능력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를 강조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39장에서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묵상합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형들에게 팔려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지만, 성경은 계속해서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사람의 눈에는 실패한 것 같고, 낙오된 것 같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상황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우리의 상황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도 같은 원리를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애굽기 3:12)
히브리어로는 '에흐예 임마크 אֶהְיֶה עִמָּךְ'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대답합니다.
 

[참고: '에흐예 임마크 אֶהְיֶה עִמָּךְ' 에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는 '~이다.' '~있다'라는 의미를 가진 '하야 הָיָה' 동사이다. 이 동사는 3:14에서 여호와 혹은 야웨라는 이름의 기초가 되는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אֶהְיֶה אֲשֶׁר אֶהְיֶה (개역개정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번역)라는 표현과 연결된다. (박철현, 출애굽산책 2014, p.82)]

 
모세가 다시 묻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나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거든 내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출애굽기 3:14)
히브리어로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אֶהְיֶה אֲשֶׁר אֶהְיֶה' 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여호와(혹은 야웨)'라는 이름을 가르쳐 주시며 '나의 이름이며,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라고 하십니다.(창 3:15)
 
'여호와(혹은 야웨) יהוה'는 '에흐예 임마크 אֶהְיֶה עִמָּךְ (내가 너와 함께 있다)'와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אֶהְיֶה אֲשֶׁר אֶהְיֶה (나는 스스로 있다)'의 공통적인 '에흐예 אֶהְיֶה (나는 있다)'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에흐예'를 우리 입장에서 '그분이 계신다'로 바꾸면 'יהוה' (여호와 혹은 야웨)가 됩니다.
또 '내가 너와 함께 있다'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로 바꾸면 '임마누엘 עִמָּנוּאֵל'이 됩니다.
모두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놀라운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하늘 위 높은 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그분은 늘 함께 계십니다.
요셉의 인생에서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친히 함께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은혜인지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사람들이 우리를 존귀히 여깁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사람들이 우리를 귀하게 봅니다.
창세기 39장에서 보디발이 요셉을 특별히 대우한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4절을 보면,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직역하면, '요셉이 그의 눈에서 '헨 חֵן'(은혜)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헨 חֵן'은 존귀히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잠언 3장 4절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여기서 '귀중히 여김'이라는 단어가 바로 '헨'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사람들 앞에서도 은혜와 존귀함을 얻게 됩니다.
 
창세기 26장에서 이삭의 삶을 보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을 때 사람들도 그를 특별하게 대했습니다.
이삭이 농사를 지었을 때 백 배의 결실을 얻었습니다.
이를 본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우물을 메워버렸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이삭은 계속해서 새로운 우물을 팠고, 그때마다 더 큰 샘을 발견했습니다.
마침내 블레셋 왕이 이삭을 찾아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창세기 26:28-29)
이것이 바로 '헨 חֵן' 입니다.
단순한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인해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존귀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단순한 종이었지만 보디발이 그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는 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사람들이 우리를 다르게 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히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의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시고 귀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누리는 축복입니다.
 
누가복음 2장 40절에 보면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위하여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공부 잘하게 해 주세요' 물론 그런 기도도 필요합니다.
'내 아들이 어떤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아들과 함께 해주세요'라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교회를 위해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또, 우리 나라를 위해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와 나라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어떻게 경험하고 계십니까?
혹시 사람들의 인정이나 평가에 연연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사람들의 인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장과 가정, 교회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의지하며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시고 존귀히 여기실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정에 너무 신경 쓰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길을 걸으며 그분의 함께 하심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를 단련하시고 정금같이 만드십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십니다.
창세기 39장 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동일한 표현이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가 더 추가됩니다.
바로 '인자(헤세드 חָסֶד)'라는 말입니다.
'헤세드 חָסֶד'는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헌신적인 사랑과 한없는 자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더 큰 어려움에 처할수록 더 깊은 사랑으로 돌보십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강하고 순결한 존재로 빚어가십니다.
 
이 진리는 시편 105편 17-19절에서도 나타납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여기서 '단련한다'는 말은 금속을 정제할 때처럼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단련하십니다.
때때로 우리의 삶에 시련이 찾아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고 불순물을 제거하시기 위해 때때로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끝날 때 우리는 더 순결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진다는 사실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단련은 결코 헛된 과정이 아닙니다.
불시험을 통과한 금이 더욱 빛나듯이, 우리도 하나님께서 다듬어 가시는 존재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삶에 어려움과 고난이 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단련 과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요셉은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더 겸손해지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어떤 연단의 과정이 있든지, 그 과정이 정금과 같이 나오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을 믿으며, 믿음으로 인내하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결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결국 존귀히 여김을 받고, 단련을 통해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신뢰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가 어떤 환경 속에 있든지 형통하게 됩니다.
때로는 어렵고 힘든 길을 가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련하시고, 더 나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이 순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임재를 신뢰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하십시오.
우리의 삶이 요셉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과 함께,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