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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설교

이간질하는 자를 대적하십시오. (창세기 37:1-4)

by 말씀고 2025. 2. 5.

이간질하는 자를 대적하십시오.

창세기 37장 1-4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원치 않는 길을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계획하지 않은 길, 바라지 않은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갑니다.
억울한 상황 속에서, 혹은 이유조차 모른 채 떠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러한 ‘추방’과 ‘유배’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가인은 형제를 죽인 죄로 놋 땅으로 떠납니다.
야곱은 형의 분노를 피해 먼 길을 떠나야 하고, 오늘 본문의 요셉도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유배와 추방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모든 일들이 결국 ‘죄’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잠언 6장 16-19절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곱 가지가 나오는데, 이는 죄의 본질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애굽으로 가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과 연결해서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것은 이간질하는 것입니다.

 
잠언 6장 16-19절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에 대해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잠언 6:16-19)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예닐곱 가지’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히브리식 강조법으로, 마지막에 나오는 죄를 특별히 강조하는 방식입니다.
즉, 일곱 가지 죄악 중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바로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7장 2절을 보면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 야곱에게 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단순한 고자질이 아니라, 가족 내에서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행위입니다.
형제들의 마음속에 불만과 미움이 자라게 만드는 일이었죠.
이것이 결국 요셉이 애굽으로 유배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성경에서 ‘이간’이라는 단어로 쓰인 히브리어 ‘מְדָנִים(메다님)’은 ‘갈등’, ‘다툼’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잠언 16장 2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악한 자들의 특징은 다툼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자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바로 화평을 이루는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하나님의 백성은 다툼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화평을 이루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이간질’이라면, 반대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화평’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이간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말 한마디가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종종 ‘나는 사실만 말했을 뿐이야.’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그 말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미움과 오해를 심어주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간질’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혹시 분쟁을 조장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직장에서 동료를 험담하며 관계를 깨뜨리지는 않습니까?
가정에서 형제와 부모 사이를 이간시키는 행동을 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간질하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은 화평을 이루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혹시 내가 이간질하는 자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이간질하는 자를 대적해야 합니다.

 
요셉은 17세의 청소년입니다.
감정이 예민한 사춘기 시기이며, 미숙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형제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행동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어야 할 정도로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요셉의 행동도 문제이지만, 형들의 모습에서도 가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곱 가지 중 다른 여섯 가지도 ‘이간질’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 여섯 가지 행동이 모두 이간질과 연결됩니다.
 
요셉만 이간질하는 것이 아니라 형들도 이간질하는 자들입니다.
창세기 37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다’는 표현을 직역하면 ‘그들은 그에게 평안함으로 말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평안’은 샬롬(שָׁלוֹם)입니다.
요셉에 대한 형제들의 감정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평범한 대화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증오입니다.
 
이러한 증오의 원인은 야곱의 편애에 있습니다.
창세기 37장 2절을 보면, 요셉이 고자질하는 대상이 레아와 라헬의 여종인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야곱이 형제들 사이에서 차별과 편애를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셉에게만 특별히 채색옷을 입힌 것도 이를 더욱 부추겼습니다.
 
이 모든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우리를 이간질하는 자, 마귀 사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창세기 4:7)
하나님께서 죄를 문 앞에 웅크리고 엎드려 사냥감을 덮치려는 짐승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전서 5:8)
 
진짜 이간질하는 자는 우리의 대적 마귀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 사탄을 대적하기 위해 우리 죄를 짊어지고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잘못도 있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죄 없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분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요소들을 점검합시다.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진리를 따르는 사람이 됩시다.
우리의 진짜 대적이 사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깨어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간질하는 자를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의 진짜 대적은 사탄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평안과 진리를 따르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우리의 진짜 대적을 분별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종종 주변 사람들 속에서 적을 찾고 판단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진짜 대적이 마귀 사탄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과 싸울 것이 아니라, 분열과 이간질을 조장하는 사탄의 계략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혹시 이간질하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화평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혹시 내 삶 속에서 누군가를 이간질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십시오.
우리의 진짜 대적이 사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서 더욱 깨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안을 만드는 자, 화평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경험하며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삼킬 자를 찾는 우는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