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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설교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25:19-34)

by 말씀고 2025. 1. 24.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25장 19-34절

얼마 전, 가수 이찬혁이 '장례희망'이라는 제목의 독특한 노래를 발표했습니다.
제목부터 흥미롭죠.
우리에게 익숙한 '장례(葬禮)'라는 단어를, '장차 올 미래 (將來)'로 재해석한 이 표현은 단순한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특히, 이 노래는 천국 소망이라는 깊은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가사의 한 부분이 더욱 눈길을 끕니다.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하네.
왜냐하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오자마자 내 몸집에 서너 배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먹었네"
이 대목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표현이 아니라, 성경 속 비전과 연결됩니다.
이사야서에 묘사된 사자가 어린 양과 함께 뛰노는 천국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또한 에덴동산의 풍요로운 장면이 겹쳐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창조주로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혼돈과 공허 속에서 질서를 세우시고, 황무한 땅을 생명이 넘치는 동산으로 바꾸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경이 이 진리를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과학의 언어인 숫자 '0'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림 언어로, 즉 우리의 마음에 그림을 그리듯 말씀하십니다.
'혼돈과 공허'는 그림 언어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공허'는 '광야'를 뜻하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땅을 물 댄 동산, 온갖 생명으로 가득한 동산으로 변화시키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그림 그리듯 보여주십니다.
창세기 2장 8절에 나오는 '창설하시고'라는 표현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심어 조경하시듯, 세상을 세밀히 만드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단순히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일뿐 아니라, 우리의 삶도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사실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리브가와 야곱을 새롭게 빚어가시는지 살펴보며, 하나님이 지금 이 시대에 우리의 삶을 어떻게 새롭게 창조해 가시는지 함께 발견해 보길 원합니다.
 

'리브가'를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25장 21절에서 우리는 리브가의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리브가는 불임입니다.
그녀에게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한계와 결핍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러한 주제가 반복됩니다.
사라도 그랬고, 한나도 그랬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불임'이라는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아카라(עֲקָרָה)'라는 이 단어는 단순히 자녀를 낳지 못하는 상태를 넘어, '뿌리 뽑힌 상태', '아무 열매도 없는 황폐한 상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불모지와도 같은 상태를 말하죠.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광야를 물댄 동산으로, 황량한 불모지를 에덴동산으로 바꾸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창 2:5)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리브가의 불모지 같은 인생을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통해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삭의 기도입니다.
리브가가 불임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창세기 1장 2절을 떠올려 보십시오.
혼돈과 공허 속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그곳에서 창조의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이 장면은 모세의 홍수 이야기와도 연결됩니다.
혼돈과 공허, 흑암과 깊음 속에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시는 것처럼, 이삭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의 영이 리브가에게 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행전에서 성령님은 기도하는 성도들 가운데 임하십니다.
성령님은 단순히 임하시기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을 새롭게 빚으십니다.
기도하는 자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리브가의 인생에서도 동일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삭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시작됩니다.
불모지 같은 그녀의 삶은 생명을 잉태하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그야말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에덴동산과 같은 인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야곱'을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실 하나님

창세기 25장 26절을 보면, 야곱은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납니다.
그의 이름, '야곱'은 발뒤꿈치를 뜻하는 히브리어 '아케브 (עָקֵב)'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단순한 신체적 묘사가 아니라 성경의 큰 주제와 연결됩니다.
창세기 3장 15절을 떠올려 보십시오.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무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야곱의 삶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그는 태중에서부터 형을 시기하며 경쟁했을 뿐만 아니라, 형 에서의 장자권과 축복까지 속임수로 빼앗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형에게서 빼앗을 때, 간교한 꾀를 냈습니다.
이 모습은 창세기 3장에서 간교한 뱀이 하와를 유혹한 모습과 연결됩니다.
결국 형 에서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 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창 27:36)
에서의 이 말은 야곱이라는 이름에 담긴 속임수와 관련된 이미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히브리어에서 '뱀'이라는 단어와 '속이다'는 단어가 어원을 공유하듯, 야곱의 이름은 그의 삶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태중에서부터 이런 야곱을 알고 계십니다.
리브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 민족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 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창 25:23)
이 말씀은 단순한 예언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격 없는 자를 선택하셔서 새롭게 변화시키실 계획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태중에서부터 죄인이었고, 인간적으로 보면 결코 축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꾀와 속임수로 얻으려 했던 축복이 결국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후에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를 야곱에서 '이스라엘' 곧 선택받은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자격 없는 자를 부르시고 그의 삶을 새롭게 빚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론: 광야를 동산으로, 죄인을 성도로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여러분
이 이야기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이 불모지와 같습니까?
기도하십시오.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은 황폐한 광야를 에덴동산으로 변화시키시는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에 죄의 흔적이 가득하다고 느껴지십니까?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느끼십니까?
그렇다면 소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자격 없는 사람을 부르시고, 그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하나님은 오늘도 기도하는 사람, 간구하는 사람, 성령의 역사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을 새롭게 빚으십니다.
여러분의 삶을 그분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은 광야를 물 댄 동산으로, 불모지를 생명으로 가득한 땅으로, 죄인을 성도로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