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창세기 18장 1-15절
📖 요약
1. 아브라함은 나그네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영접하며, 하나님을 만나 예배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2. 그는 최선의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나그네와 작은 자를 대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3.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만, 하나님은 그녀의 비웃음을 기쁨으로 바꾸시며, 믿음으로 응답할 때 참된 은혜와 만족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장면입니다.
이 일은 단순한 나그네 방문으로 보일 수 있지만, 깊이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섭리를 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마므레와 상수리나무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연결된 장소로,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동산을 연상시키는 은유의 공간입니다.
창세기 13장 18절에서는 이곳에서 아브람이 예배를 드립니다.
아브라함은 이 은유의 공간에서 하나님을 자신의 장막으로 영접합니다.
아브라함의 장막이 성막이 되고, 회막이 되는 순간입니다.
이 예배의 자리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기고 약속의 말씀을 받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자리에서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세 가지로 나누어 묵상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때 우리는 진심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두 천사는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옵니다.
천사에 대한 흔한 오해가 있는데, 날개를 달고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들이 영적인 존재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나그네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들을 정성껏 대접하며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살진 송아지를 준비하고 우유와 빵으로 극진히 섬깁니다.
히브리서 13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아브라함의 행동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실 때, 우리의 마음과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특히, 하나님께서 천사와 함께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장면은 의미가 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1-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경험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와 삶의 자리에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을 예배와 삶 속에서 영접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우리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맞이합시다.
그리고 예수님을 우리 삶의 자리로 영접하여 맞이합시다.
섬김과 헌신으로 하나님께 최선을 드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한 섬김과 헌신을 삶으로 보여줍니다.
단순히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넘어, 그가 가진 최선의 것을 드리며 정성을 다합니다.
이는 예배에서 우리가 드려야 할 태도를 말합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예배에서 드려야 할 태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태도도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모습은 아브람이었던 이전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아브람 시절, 그는 하갈이라는 여종을 학대하지만, 하나님을 만나 아브라함이 된 후,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하갈'이라는 이름이 '나그네'를 의미하는 건 우리를 묵상의 자리로 이끌고 갑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섬기는 것임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난 사람의 삶은 지극히 작은 자를 예수님을 섬기듯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십니다.
"내년 이맘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라는 그 말씀을 듣고 속으로 웃습니다.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오?"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합니다.
여기 "즐거움"이라는 말은 '에덴'이라는 히브리어 원어와 관련됩니다.
에덴의 기쁨을 상실한 우리 모습을 은유를 통해 잘 보여줍니다.
왜 사라의 삶에 기쁨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가져다주는 에덴의 기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이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인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있습니다.
이에 두려워 사라가 자기는 웃지 않았다고 거짓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도록 거짓말하는 에덴동산의 뱀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뱀’이라는 히브리어의 어원은 '속이다' '거짓말하다'와 관련이 있습니다.
악한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우리를 속이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의 비웃음을 기쁨으로 바꾸십니다.
‘웃음’을 뜻하는 ‘이삭‘을 아들로 주셔서 ‘에덴의 기쁨’을 사라의 삶에 회복시켜 주십니다.
결론: 하나님의 만나는 예배의 자리에서 응답하는 삶을 삽시다.
아브라함의 장면은 오늘날 우리의 예배와 삶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함께하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할 때, 우리는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과 삶을 활짝 열어드립시다.
진심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섬김과 헌신의 삶으로 나아가며,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 때, 우리는 주님의 은혜와 기쁨을 충만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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