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
창세기 6장 13-22절
요약
📖 노아의 방주는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동시에 구원의 계획을 보여줍니다.
🌊 죄는 세상을 타락과 혼돈으로 몰아넣지만, 하나님은 방주를 통해 노아와 그의 가족을 보호하시며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입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은 실제 역사적 사건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오늘 이 시간, 그 놀라운 하나님의 메시지를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죄악이 세상에 미친 영향력
창세기 6장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한 것을 보셨다고 합니다.
"사람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는 구절은 죄악의 심각성을 강조하죠.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라(רַע)'는 '악함' '해로움' '부패'를 의미하죠
반대로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하실 때 사용된 히브리어 '토브(טוֹב)'는 '선함' '좋음' '기쁨'입니다.
처음 창조 때는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것이 선하고 아름다웠지만, 죄로 인해 세상은 혼돈과 공허,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창세기 1장 2절의 상태로 되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의 상태로 돌아가 버린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더라'입니다.
특히, 창세기 6장 2절은 당시의 도덕적 타락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말은 성적 타락과 욕망의 극단적 방종을 보여줍니다.
죄악은 사람의 눈에는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추하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좋아 보여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추한 것이 죄악입니다.
죄악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 세계를 파괴하고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마치 홍수가 온 세상을 덮어버린 것처럼, 죄악은 아름답고 행복해야 할 가정을 무너뜨리고, 기쁘고 선해야 할 삶을 혼돈과 공허 상태로 만듭니다.
오늘날도 이 죄악의 영향력은 여전히 우리를 유혹하고 무너뜨리려 합니다.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대책: 방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악의 영향력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흔히 방주를 큰 배라고 생각하지만, 방주는 단순한 배가 아닙니다.
돛도 없고, 방향키도 없으며, 노를 젓는 사람도 없는 방주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움직이는 공간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방주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거룩한 공간, 즉 '성막'과 '성전'과 같은 곳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라고 명하신 건축물은 방주와 성막뿐입니다.
둘째, 방주는 상중하 삼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성막과 성전도 성전뜰, 성소, 지성소라는 삼단계 구조를 가집니다.
셋째, 에덴동산 역시 최초의 성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온갖 생물과 함께 살았던 것처럼, 방주에서도 노아와 그의 가족이 동물과 함께 삽니다.
넷째, 노아라는 이름은 '안식' '위로'를 뜻하며, 방주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참된 위로와 안식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다섯째, 방주는 '고페르' 나무로 만들고, 그 안팎을 '역청'으로 칠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역청'이 히브리말로 '고페르'입니다.
‘고페르(גֹּפֶר) 나무’와 ‘역청’ 즉 '고페르(כֹּפֶר)’가 단어는 다르지만 발음이 비슷합니다.
‘고페르 나무’와 ‘역청 고페르’의 어원이 같습니다.
물론 학자 따라 견해가 다른 경우가 있지만, 그 어원이 '카파르(כָּפַר)인데요, '가리다' '덮다' '속죄하다'라는 뜻이죠.
성전이 속죄의 장소인 것처럼, 방주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결국 방주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보여주는 상징이며, 죄악의 홍수 속에서도 생명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방주
방주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단어는 '테바(תֵּבָה)'입니다.
이 단어는 원래 애굽어로 '상자' 또는 '관'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참고: "방주"(테바)를 나타내는 단어는 이곳(출 2:3_갈대상자)과 노아가 방주를 짓는 홍수 이야기에만 나타나는데, 대형 상자나 관을 의미하는 이집트 차용어인 것으로 보인다._중략_카이로 박물관에 소장된 보물 중에는 BC 1만년 경에 태어난 아이의 시체를 담은 가늘고 긴 갈대 바구니가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애굽의 장례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일부 학자는 레위지파의 어머니가 장례의 전략을 썼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한다. (출애굽 성경신학, 마이클 모랄레스, 부흥과 개혁사 2021, p.138)]
칼빈을 비롯한 여러 신학자들은 ‘방주’를 '관'으로 해석합니다.
이는 중요한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20-21절을 보면, 노아의 홍수는 세례의 상징으로 묘사됩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세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하죠.
방주에 들어간다는 것은 옛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방주에 들어가는 순간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는 순간입니다.
내게 있는 옛 아담, 옛사람이 죽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방주를 나오는 것은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방주에서 나오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는 장면입니다.
창세기 8장 1절에 보면,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에 있는 모든 생물을 기억하사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며 물이 줄어들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정면은 창세기 1장 2절,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장면과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자 세상이 창조되기 시작합니다.
세상을 가득 채우던 혼돈의 물이 질서를 찾아 바다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죠.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땅에 바람이 불게 하자, 물이 점점 줄어들고 땅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이라는 히브리말과 '바람'이라는 히브리말이 모두 '루아흐(רוּחַ)입니다.
'바람'으로도 '성령'으로도 번역이 모두 가능하죠.
이는 성령의 역사 속에 만물이 새로워지고 우리가 새사람으로 거듭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성령은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창조의 영이시며,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의 방주는 단순한 배가 아닙니다.
방주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죄악이 우리 삶에 몰려올 때, 하나님의 방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시고, 새 생명 주시는 구원의 방주이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오늘, 그 방주이신 예수님 안에서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을 새로운 생명으로 창조하십니다.
그 은혜를 경험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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